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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논어-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by 스바형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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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이 인에 대해 질문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이기고 다시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
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안연>

 

<해설>

 

 

  안연은 공자가 아끼는 수제자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안연을 특별하게 아꼈던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도를 즐기고, 또 몸소 공자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자들 중에 누가 학물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안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학물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으며,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럼 사람이 없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공자의 3천 제자 중에서 수제자였던 안영 역시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역시 인에 대해 지해한 괌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역시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이때 공자는 다름 제자와는 달리 그에게 "자기를 이기고 예로 나아가다."란 '극기복례'를 제시했고,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안연이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며 ㄴ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나아가다."란 말은 "자신이 사욕을 없애고 남을 배려하며 사랑하는 격식을 갖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인과 예는 일맥상통한다. 인은 남을 사랑하는 것으로 내용에 해당되고, 예는 사람을 몸소 실천하는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기> <유행>편에도 "예절이란 인이 겉으로 드러남이다."가고 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공자는 평소 예를 매우 강조하여 아들 리에게도 "예를 배웠느냐?"라고 묻고는 "예를 배우지 않으면 바로 설 수가 없다"고 지도했으며, <논어>의 마지막 장구에서도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고 지적하고 또 "예를 알지 못하며 ㄴ세상에 설 수가 없느니라."라고 단언하였다.

 

  그렇다면 예란 총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정나라 대부 정자산의 말을 인용하여 <좌전> <소공25년>조에 실린 예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저 예라는 것은 하늘의 벼리요, 땅의 마땅함이요, 사람이 행해야 할 바이다. 천지의 핵심적 질서를 사람이 실제로 본받아 구현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 ..... 이러한 예의 질서를 흔들어버리면 혼란한 세상이 되고 백성은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예를 제정하여 인간의 본성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는 인과 더불어 표리관례를 맺은 예를 중시했다. 그래서 <논어>에는 예에 관해 언급한 문구가 유독 많다.

 

  "군자가 문을 널리 배우고 간략하게 예로 단속하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군신 간에도 예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임금은 신하 부리기를 예로써 하며,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개개인이 남다른 덕성을 지녔어도 예가 없으면 그 덕성이 무의미하게 끝날 수도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즉 "공산하기만 하고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신중하나 예가 없으면 두려워 하는 것 같고, 용맹하나 예가 없으면 문란해 보이고, 곧으나 예가 엇으면 거만해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도 시종일관 그 예를 다해야 한다며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를 다해 섬겨야 하며, 돌아가겼을 때에도 예를 다해 장례를 치러야 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도 예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허례허식은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예는 인을 실천하는 필수적인 형식이지만 내용이 빠진 허례적인 형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양화>편에서 공자는 누구나 "예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예는 예물인 옥과 폐백에 있지 않다."고 경계하기도 하였다. 또 공자는 이렇게 단정했다.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예인들 무엇하리오?"

 

 

 

논어(5)-공자가 말씀하셨다. "강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이 어눌하여도 신중한 자는 인에 가깝다.

子曰 "剛毅木納 近仁." 자왈 강의목납 근인 공자는 일을 행하는 덕목으로 '공, 관, 신, 민, 혜'를 제시했고, 또 "강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이 어눌하여도 신중한 자는 인에가깝다"고 하였다.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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