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궁이 계씨의 재상이 되어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사에게 먼저 시키고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등용해야 한다.
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중궁위계씨재 문정 자왈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子路>
선유사 사소과 거현재 <자로>
<설명>
중궁은 공자의제자 중에 덕행에 뛰어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공자가 중궁을 평가하면서 "중궁은 임금을 시킬 만하다." 하니 군자가 말하기를, "중궁은 관대하고 도량이 넓으며 간략하고 중후하니, 제후로서의 정치를 맡길 만한 사람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중궁은 어질기는 하나 말재주가 없다."고 하였더니 공지ㅏ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재주를 무엇에 쓰겠느냐. 재치있는 말로 다른 사람과 맞서다가 자주 미움을 받으니, 중궁이 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재주를 무엇에다 쓰겠는가?"하여 그의 어눌한 점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위 구절은 그가 노나라의 권세가인 계시의 가신이 되어 공자에게 정사를 물으니 공자가 "우사에게 먼저 시키고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등용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중국은 공자에게 "어떻게 현명한 인물을 알아서 등용합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공자는 "먼저 네가 아는 현명한 인물을 등용하면 네가 미처 모르는 자들은 남들이 내버려두겠느냐?"라고 대답하였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정구는 <용현>이란 글에서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산유사'라 한 것으로 말하자면, 군주는 천하의 번다한 일을 처리해야 하니 허다한 사무를 어찌 친히 다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유사에게 실무를 위임하고 설정을 거두도록 덕려하고 타이르며, 모든 기술자가 직분에 힘쓰고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모든 일을 낱낱이 따져서 아래로 신하의 직분까지 지나치게 간선한다면, 시일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정이 이와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그 누적되어 온 폐단이 마침내 진시황으 저울과 추로 서류를 헤아리던 '형석정서'나 당나나 문종이 회의하다가 길어져 식사 때를 놓치면 호위병들에게 밥을 날라다 먹었던 '위사전찬'과 같은 경우에 이르게 될 것이니, 한갓 정신만 ㅅ고로울 뿐 손해는 있어도 이익은 없어 단지 쇠망만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어진 인재르 얻어 실무를 위임하면 각자 자기 직분을 맡아 힘써서 기강이 서고 만사가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어진 인재에게 위임하면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소과'로 말하자면, 사람이 과실이 없다면 진실로 좋겠지만 대성인이 아니고서야 잘못이 없을 수 없을 수 없으니, 사람의 어짊과 삿됨은 작은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임금이 신하를 관찰하려면 결단하고, 일을 실행하고, 근거를 살피는 일의 핵심만 보아야 할 뜨름입니다. 세상의 명성과 공적, 거티레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업무의 문서상 과실과 착오만 없으면 그만이라 생각하며 자질구레한 생실 따위에만 근신하고 좁은 도량으로 자존심만 지키는 자는, 대절과 대의를 만나면 본심이 탄로 나서 자신과 나라를 망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군자는 비록 작은 절개나 세세한 일에는 누락함을 몇치 못하지만 대절과 대의를 만나서는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습니다. 임금이 만약 허물이 없느느 사람만 취하여 작은 허물도 가혹하게 책망한다면 신하들은 죄를 짓지 않기에도 겨를이 없을터이니, 어찌 그 뜻을 펼 수 있겠습니까. 이는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궁중이 "어떻게 어진 인재임을 알고 등용하겠습니까?"라고 한 질문에 대해 공자는, "네가 알고 있는 어진 인재를 등용하면 네가 모르는 인재들 남들이 버려두겠느냐?" 하셨다. 이에 대해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는 위로는 임금으로 부터 아래는 백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을 알아보는 것으로 인재를 삼는다는 말이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재를 노한다면, 눈이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가시밭과 물이나 불 속에 빠질 것이니,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하였다.
<공자가어>의 <애공문정>에는 공자께서 평소 "정치는 인재를 얻는데 달려 있으니, 어진 이를 기용하지 않고 정치를 잘하는 이는 없다."고 하였고, 자유는 무성의 읍재가 되엇는데 공자가 "인재를 얻었느냐?"고 물었다.
"담대멸명이란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가 어째서 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자유가 대답하였다. "그는 좁은 지름길을 다니지 않고 공무가 아니면 제 방에 찾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공자는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가 정치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논어(11)-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가난해도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고, 부유해도 남에게 교만을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여하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야 < 설명 > 에 보면 "자공은 시세를 보아 물건을 매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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