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씀하셨다. "능히 다섯 가지를 천하에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쭈어 물으니 공자가 말씀하셨다.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爲仁矣."
자장문인어공자 공자왈 능행오자어천하위인의
請問之 曰 "恭寬信敏惠" <陽貨>
청문지 왈 공관신민혜 <양화>
<해설>
인은 공자 사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제자가 진지하게 인의 실체에 대해 묻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앞서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근본은 '효제심'으로 시작하여 '충서'의 정신과 방법으로 실천할 것을 지도한 바 있다. 본분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인의 다섯 가지 덕목의 실천과 그 효과를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이란 남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자기 스스로 공손하게 처신함을 말한다. 다른 제자 번지가 또다시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평소에 집에서 거처할 때는 공손한 자세를 지니며, 일을 밭아 처리할 때에느느 공경히 해야 하며, 남을 대할 때에는 충심으로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중궁이 인에 대해 맏자 공자는 "문 밖에 나가서 사람을 대할 때에는 큰 손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공손히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느는 것처럼 공경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마라. 그러면 나라에서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에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즉, '공산한 사람은 누구도 함부로 그를 모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상고 시대의 순임금이 "자기 몸을 공손히 하셨다."고 칭송하였고, 본인 스스로도 평생 몸가짐을 공손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제자 자공이 공자의 성품을 "온화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검약하고 겸양하였다."고 찬양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은 너그러움으로 남을 대할 때에 관용, 관대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에 공경스럽지 않으며, 초상을 치르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 사람을 보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자장은 "군자는 현자를 존중하지만 범인도 포용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붇돋우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도 가련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윗사람이 되었을 때에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신'은 빋음, 신의, 신실한 마음가짐을 말한다. 대인관계와 인을 행함에 있어 신의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으면 그 가함을 알 수 없다."라고 했다. 때문에 신의가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군자의 한 마디는 사두마차도 따라가지 못한다." 즉 말을 한 번 하면 주워 담기가 어렵고, 한 번 승낙한 말은 천금과 같으므로 약손한 말은 틀림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민'은 '재빠르다, 총명하다."는 뜻으로 민첩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헹동으 ㄴ및접하게 한다.'고 하였다. 또 "못에 가서 물고기를 탐내하는 것보다는 물러나서 그물을 뜨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혜"는 은혜를 뜻하는 것으로 은혜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르고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장에게 '공, 관, 신, 민, 혜'를 행하면 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다섯 가지 덕목을 구비한 사람은 역사상 괸장히 드문데, 공자와 그 제자를 제외하고 가장 저명한 사람을 꼽을가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은 어려서부터 출중하였는데, 그의 스승은 수경 선생으로 양양성 남족에 있는 수경장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수경선생의 습관 중에 하나가 집에서 기르는 수탉이 매일 한낮이 될 무렵에 꼭 세 번 우는데, 이 닭 울음 소리를 듣고는 수업을 마치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배우기를 좋아하여 하루는 닭이 울 무렵에 쌀을 준비하여 창을 통해 마당으로 뿌리곤 했다. 이때 수탉은 울 시간이지만 쌍을 먹기에 정신이 팔려 원래보다 1~2시간씩 늦에 울었다. 나중에 수경 선생이 이 비밀을 발견하고 스승을 기만했다고 제갈량을 집으로 쫓아 보냈다. 제갈량이 떠난 후 수경 선생의 부인이 제갈량을 대신하여 간청하였다. "제갈량이 스승을 기만한 것은 더 배우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니 한 번 용서해 주세요!" 수경 선생도 제갈량이 배우길 좋아하고 청명한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화가 풀리지 않아 제갈량의 성품이 어떠한지 더 살펴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제갈량이 살던 융중에 서당의 동자를 보내 몰래 그를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동자가 돌아와서 세 가지 일을 고했다. 첫째는 제갈량의 어머니가 겨울에 추위를 몹시 타자 제갈량이 산에 올라가 기침에 좋은 수정초를 베어다 침상에 깔아드렸고, 또 매일 저녁 자신이 먼저 어머니의 이불 속에 들어가 잠자리를 따뜻하게 만든 다음에 어머니가 편하게 주무실 수 있게 해드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갈량의 집과 우물 사이에 밭 2개가 있는데, 키가 작은 제갈량이 물통을 들고 다니다가 혹여 나므이 작물에 피해를 줄까 우려해 물을 길러 갈 때마다 밭을 돌아서 다녔다는 것이다.
셋째는 제갈량의 집 부근의 한 청년에게 가르침을 청했는데, 나중에 제갈량의 학문이 그 청년보다 높았음에도 여전히 공손하게 처신했다는 것이다.
수경 선생은 이 말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동자를 거느리고 제갈량을 찾아가서 다시 공부할 것을 권했고, 자신의 모든 학문을 다 전수해 주었다. 나중에 제갈량이 유비의 책사가 된 것은 박학다식한 학문을 물론이과 위와 같은 '공, 관, 신, 민, 혜'의 품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촉한의 재상이 되어 어진 정치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또한 남방의 정벌에서도 적장인 맹획을 7번 잡았다가 7번 풀어주었던 '칠종칙획'의 고사처럼 너그러움과 은혜를 베풀 줄 아는 배포를 지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가 죽자 그 아들 유선을 받들어 자신이 죽을 때까지 북벌을 감행하여 끝까지 신하로서의 충성과 신의르르 지켰다. 제갈량이야말로 공자가 언급한 '공, 관, 신, 민, 혜[를 행했던 인자 중에서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3)-증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입니다."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어느날, 공자가 증자에게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되어 있다."고 말하니, 증자가 바로 공자의 뜻을 알아듣고 "예."라고 대답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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