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가 인을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顔淵>
번지문인 자왈 애인 <안연>
<해설>
공자의 근본 사상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인仁이라 할 수 있다. 이 인을 가장 알기 쉽고 명확하게 해설한 것은 <논어>에서 번지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물었을 때 "인이란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준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 사정으로 알려진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인은 곧 친親함"이라고 풀이하고, 글자의 형태는 사람 '인人'과 두 '이二'로 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를 다룬 책인 <국어>에서도 "사람이 서로 사랑해야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고, 공자 이후 선진 시대의 유학을 집대성한 맹자孟子 역시 인을 사랑이라고 규정했으며, "자신이 먼저 남을 사랑하면 남들도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는 유학뿐만 아니라 다른 사상가 역시 유사항 개념을 지니고 있다. 즉 도가의 장자莊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에 이익을 주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했고, 법가의 한비자韓非子는 "인이라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ㅏ, 다른 사람의 복을 기뻐하고 화를 싫어하는데, 마음속에서 생겨 그만둘 수도 없고 그 보답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노자가 말하는 최상의 인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인은 "천지간의 사물의 본질 가운데에는 사람이 가장 종귀하다"는 인본주의를 바틍으로 사람끼리 서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공자가 조정에서 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하인이 집의 무구간에서 불이 났었다고 고했다. 그러자 공자는 가장 먼저 "사람이 상하지는 않았는가?"라면서 말을 돌보던 하인들의 안위부터 물었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영한 질문이지만 당시 봉건사회에서 말의 재산 가치가 말을 돌보는 하인보다 높았던 상황에서, 말보다 사람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던 공자의 인본주의 사항은 바로 인에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왕 말에 관한 고사가 나왔으니, 다음의 한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한다. 춘추 시대 진나라 목공은 말을 매우 아끼는 군주로 그의 휘하에는 천리마를 잘 감별할 수 있는 백락이라는 신하를 거느릴 정도였다. 하루는 목공이 기산 부근에 사냥을 나왔다가 자신의 준마를 잃어버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기산 부근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목공의 준마를 잡아서 먹고 있었다. 말을 찾던 관리들이 이를 체포하여 처벌하고자 목공의 처분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목공은 즉시 "군자는 짐승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오. 배고픈 백성들이 나의 준마인 줄 모르고 말을 잡아먹었구려. 속설에 좋은 말을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들에거 술을 나눠주고 모두 사면하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목공의 인자한 처분에 말고기를 잡아먹었던 백성들이 모두 감격했다.
그 후에 이웃 나라인 진에서 큰 기근이 생기자 목공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양식을 보내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고으이 나라에 큰 기근이 생겨 진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진나라는 목고으이 나라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기회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분노한 목공은 진나라 군대와 한원이라는 지방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포위되는 위갑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필사적으로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목공을 구했다. 그 덕분에 목공은 적군을 물리치고 적군의 군주인 혜공을 사로잡는 혁혁한 전공을 세울 수 있았다. 당시 목공을 구한 사람들은 바로 몇 년 전에 목공의 말을 잡아먹었던 백성들로, 목공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던 것이다. 또는 목공은 포로로 잡은 적의 군주인 혜공응ㄹ 죽이지 않고 용서하여 풀어주고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처럼 내가 먼저 베푼 사랑은 다른 사랑을 낳는 법이다. 또 이 진 목공의 고사는 "원한은 곧음으로 갚고, 은덕은 은덕으로 갚는 법"이라는 공자의 또 다른 말씀에도 부합된다. 결국 백성을 사랑하고 이웃 나라의 어려움가지 돌보았던 진목공은 중국 춘추 시대 제후들의 맹주인 패자가 되었으며, 후일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하는데 기잡늘 다졌던 일물로 평가받고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바르게 해야만 그들이 덕을 실행할 것이며, 신분이 천한 사람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너그럽게 해야만 그들이 힘을 다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임금이 된 사람은 덕을 베풀고 남을 어질게 대하는데 힘쓰지 ㅇ낳을 수 없다. 진목공 사례가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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