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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논어-자왈 지사인인 무구생이해인 유살신이성인

by 스바형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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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도리어 자신의 몸을 바쳐 인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衛靈公>
자왈 지사인인 무구생이해인 유살신이성인 <위령공>

 

<해설>

 

 

  인을 구하는 것은 자기로부터의 시작이지 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공자께서는 "군자는 식사를 끝내는 동안에도 인자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니, 황급할 때에도 의연히 인자해야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역시 그래야 한다."고 하여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철저한 인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인의 실천은 소극적인 인을 행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인을 행함에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선비는 위태로움을 보면 생명을 내걸고 이익을 보면 도의를 생각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등을 주장하여 인을 적적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역사상 '살신성인'의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그중 여기에서는 중국의 문천상과 한국의 안중근 의사의 예를 설펴보기로 하겠다.

 

  문천상은 중국 남송 말기의 충신으로 자는 송서 호는 문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충신이나 영웅 전기를 즐겨 읽었으며 그들을 따라 배워 기개를 떨칠 포부를 가졌다. 1256년 20세 때 문천상은 진사 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이 무렵 원나라 군대가 대대적으로 남송을 공격해 오자 조정에서는 결사항전과 화의를 하자는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섰지만 환관 동송신은 황제에게 퇴각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종용했다. 문천상은 이 일로 민심이 동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주문을 올려 역적 동송신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문천상은 관직에서 해임되었다. 뒤에 재기용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구너세가 가사도와의 불화로 공적에서 사퇴하고 만다.

 

  문천상은 원래 풍류 사나이로도 유명하데, 태평한 시절에는 매우 사치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1274년 원나라가 대대적으로 침공해 와서 국도 임안에 육박하자 문천상은 가산을 모두 털어 군비로 충당하고 2만명의 의병을 조직했다. 조정에서 그 소식을 듣고 벼슬을 주고 급히 임안으로 들어와서 사수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임안으로 돌아간 문천상은 원군과 사생결단을 내려고 했지만 조정의 반대로 무산되고 대신 원나라 총사령관 백안과의 화의를 구하도록 파견되었다.

 

  이때 원나라는 송나라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했고, 문천상은 단호하게 거절하여 원나라에 구류되고 말았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 문천상은 연해지구에 와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다시 원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3년 2개월 동안 옥중에서 보냈다. 원날 세조 쿠빌라이는 충직한 절개를 지닌 문천상을 바로 죽이지 않고 온갖 회유를 통해 자신으 대신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문천상은 두 조정을 섬길 수 없으니 때가 되면 죽겠다고 하였다. 이때 옥중에서 극심한 고초로 인해 거의 실명한 상태에서 그가 남긴 <정기가>, <절명사> 등의 시문을 후일 세인을 감동시켰다. 그는 <절명사>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공자께서는 살신성인하라 하시고 맹자느 ㄴ죽음으로 의를 취하라고 했나니, 오직 충의로움을 다해야만 인에 이르는 소치라고 할 수 있다. 성현의 책을 읽은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오늘 이후에는 거의 부끄러움을 면하겠노라."

 

  그리고 사형 집행관에게 "나의 일을 마쳤다."라고 나직이 말하고 죽었는데, 그의 의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었다.

 

  지사와 어진 사람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나니,

  한때 재앙을 당했으나 그 빛은 천년에 길이 남으리.

 

  우리나라에는 문천상 같은 열혈 영웅으로 안중근 의사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7년 이전에는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등 계몽운동을 벌였고, 그 뒤 러시아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하다가 1909년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하여 하얼빈 역에서 사살했다. 그 후 뤼순 감옥에서 투옥 중에 <논어>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어렵거나 궁핍한 생활을 오랫동안 견디지 못한다."

  "지사와 어진 사람은 살신성인한다."

  "이로움을 보고 의리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버린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에 사형당했다. 문천상이나 안중근 의사처럼 전란 시에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 살신성인한 경우는 숭고하다.

 

  그러나 평상시에서도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인 젊은 사람들도 많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일본 지하철 승강장에서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의 경우와 거의 매일같이 화재 현장에서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소방공무원, 경찰, 군인 등등 우리 사회는 이런 희생적인 살실성인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논어-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논어-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안연이 인에 대해 질문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이기고 다시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顔淵問仁 子曰 "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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